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노마 윈스턴은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마주하고 싶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한국을 처음 찾은 건 2013년 9월에 열린 을 통해서였다.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며칠 동안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첫 번째 연주는 9월 4일, (예술의 전당이 아닌) EBS 에서 펼쳐졌다. 사운드 체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그날 연주할 곡목을 정할 때가 됐다. 머지않아 발표될 새 앨범의 곡들이 하나둘 큐시트의 빈칸을 메워갔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앙코르도 준비해야 하나요? 보통 녹화 분위기가 어때요?" "대개는 준비하십니다. 물론 오늘은, 요청이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겠고요."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곡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
한 10여년 전에 네이버가 부산영화제 메인 스폰서였는데 그때 나는 네이버 전체 콘텐츠 서비스를 맡고 있었다. 부산 가면 항상 파라다이스 호텔에 내 방이 딱 있고 황금기였다(웃음). 그때만 해도 늘 휴대용 시디피와 시디 30장을 낱장으로 넣을 수 있는 케이스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않나? 어디에 놀러 가느냐,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듣는 음악이 바뀌지 않나. 예를 들어 기차를 타면 거의 팻 메시니 같은 음악을 들고 가고, 밤에는 '50년대 모던 재즈 이런 걸 듣고 상황에 맞게 시디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날은 숙소를 나선 뒤에 시디 케이스를 놓고 나온 걸 알게 됐다. 시디피만 들고 나왔는데 시디는 하나도 없었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데 'X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영화..
스무 살 무렵, 유성에 있는 한 편의점에서 야간알바를 했다. 유흥가의 심장부쯤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다. 가끔 살짝 친해진 모텔 지배인들이 병맥주를 사가며 가격표를 떼 달라 하기도 했고(그런데 그땐 맥주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었나? 왜 이런 기억이 있지?), 새벽녘에 일이 끝난 언니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인데, 유투의 [zooropa] 카세트가 편의점 매대에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즐겁게 일했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즐거웠고, 자정이 되면 막 유통기한이 끝난 음식을 먹는 재미, 각종 잡지와 신문을 읽는 재미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 있어 좋았다. 거의 대부분 내가 선곡을 했는데 헤비메탈 이런 건 잘 안 틀었고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가요와 팝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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